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채식인)가 저술한 『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잎새』를 메리 H 앨리스가 번역한 글의 7장에서 그는 육체적 탐닉을 극복하고 영적 성장에 집중하는 절제와 자제력을 옹호합니다. 9장에서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의 삶은 선행을 통해 나타나며 신과 타인을 향한 사랑을 반영한다고 강조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사랑은 강하고 지속하며 무적이기에 중상모력과 위험, 죽음이나 이런 어떤 것도 그 사랑을 파괴할 힘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은 천 가지 방법으로 고통받아도 사랑의 근간을 숙고하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주님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이나 나라, 부에 대해 묻지 않고, 보답으로 사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심지어 미움받거나 멸시받거나 파괴당해도 여전히 사랑하는데, 그의 애정은 튼튼한 기초인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눈을 두고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가혹한 자, 조롱하는 자, 신성모독하고 미워하는 자, 그분을 보기조차 원치 않는 자, 그분 사랑보다 돌과 나무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에서 오는 사랑으로 사랑하셨으니 이와 비교할 다른 사랑은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모욕한 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은 것을 보십시오 심지어 그들을 위해 아버지께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자신이 한 일을 모릅니다』 나중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같은 사람들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사랑에 열심을 내며, 그런 사랑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온유함으로 현재와 미래의 좋은 것을 즐기고 그분께 영원토록 영예와 영광을 빕니다. 아멘.
우리 삶을 판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적의 발현입니까? 아니면 나무랄 데 없는 행실입니까? 분명히 후자입니다. 표적을 부르는 이유는 이 세상에 속하고 내세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선한 삶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이 사랑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고, 사랑으로 빛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의 삶을 바로잡기 위해 이런 식으로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