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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마하비라의 삶: 위대한 출가, 4부 중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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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요?‍ (잘 지냅니다)‍ 잘 지내요? 금욕생활을‍ 할 준비가 됐나요?‍ 아니죠. 어제 밤‍ 호법들과 간단한 모임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들이 말했어요. 『주방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좋다고 하고‍ 주방으로 갔어요. 얼마나 금욕적이던지요!‍ 정말 음식이 많더군요. 난 계속 나눠 주고‍ 그들은 계속‍ 더 가져왔어요. 그런 식의 금욕주의였죠. 신이 날 시험하려 했나‍ 봐요. 내가 그 맛난 음식을‍ 거부할 수 있나 보려고요. 신께 난 못한다고 했고‍ 그도 이미 알고 있었죠. 『도대체 왜 그래요?‍ 내가 못 할 줄 알면서‍ 왜 자꾸 물어 봐요?』‍

자, 우리를 대신해서‍ 금욕 수행을 했던 위대한‍ 스승에게로 갑시다. 사실은‍ 모든 스승이 고행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그런 고정관념을‍ 갖지 마세요. 석가모니 부처를 보세요. 얼마나 많은 생을‍ 왕이나 고관대신 혹은‍ 사회에서 대단한 인물로‍ 살았는지를요. 늘 승려였던 건 아니죠. 심지어 승려가 되기 전엔‍ 호화로운 삶을 살았죠.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진 않았어요. 뭘 소유한다는 것과‍ 집착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걸 소유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세속에‍ 묶여 있다는 건 아니죠. 그러니 중요한 건‍ 내면을 기억하는 겁니다. 겉모습이나 행동이 아니라‍ 여러분의 내면, 마음, 동기, 목적이‍ 중요한 겁니다 삶에서 뭘 원하느냐죠.

한 회사의 CEO이거나‍ 큰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그에 맞춰 옷을 입고‍ 작은 차나 오토바이가‍ 아니라 리무진을‍ 타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걸‍ 기대하니까요. 한 나라의 왕이‍ 궁전에서 거지 옷이나‍ 청바지 같은 걸 입고‍ 있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요? (아뇨) 아니죠.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람들을 만나러 갈때나‍ 평소에 누더기 옷이나‍ 찢어진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 사람들과 사회가‍ 그걸 받아들일까요?‍ 그래요? (아닙니다)‍

좋아요. 지금은 말할 때죠. 입을 열어야 할 때는‍ 입을 여세요. 그리고 선 기간에는‍ 입을 닫으세요. 에너지를 아끼세요. 축복을 보존하세요. 여러분의 진보를 위해‍ 가능한 건 뭐든 아껴요. 그러니 모든 스승이‍ 전부 금욕생활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간소하게 생활하세요. 필요한 건 소유하고‍ 필요. 없는 건‍ 주거나 팔거나‍ 버리세요. 더 이상‍ 쓸 데가 없다면요.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면‍ 생활을 간소하게 하세요. 집에서요, 알겠어요?‍ 물론 난 집에서 더‍ 간소하게 살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치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운명이라서‍ 그냥 받아들일 뿐이죠.

최근에‍ 우리 지구에 관한‍ 고대 예언들을 보다가‍ 하이힐을 신은 스승이‍ 올 거라는 예언을 봤어요. 그러니 나는 아마도‍ 유행을 따르는 거겠죠. 전에는 전혀 몰랐어요. 그들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예언들을‍ 찾아내는지, 어디서‍ 다 캐내는지 모르겠어요. 난 몇 가지만 알거든요.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와‍ 인도 예언 같은‍ 몇몇 정도만요. 그 밖엔 몰랐어요.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노스트라다무스예요. 내가 유럽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 당시‍ 내겐 해당사항이 없었죠. 난 그냥 일하는 한 여성에‍ 불과했고 그 후 결혼했죠. 어디선가 그에 관한 글을‍ 아주 잠깐 동안 읽었어요. 대충 읽고 책장을 넘겨서‍ 내용을 잘 알지도 못했죠. 모두가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 한마디씩 했거든요.

나도 거기 가서야 읽었죠. 불어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읽는 연습 삼아‍ 읽어봤을 겁니다. 아무래도‍ 예언 같은 게‍ 읽기에 더 흥미롭고‍ 주의를 끄니까요. 그게 다예요. 다는 아니고 일부만 읽었죠. 그 당시 내 불어 실력은‍ 별로였어요. 지금은 더‍ 형편없죠.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나빠져요. 사용을 안 하니까요. 내 만돌린(악기)처럼요. 그래서 많은 스승들, 예를 들면‍ 시크교의 마지막 스승은‍ 왕처럼 차려 입었어요. 전혀 금욕적이지 않았죠. 아름다운 보석과‍ 기다란 진주 목걸이에‍ 품위 있는 의상을 입고‍ 장신구를 착용했죠. 구루 나낙 같지 않았어요. 구루 나낙은 시크교의‍ 첫 구루였어요.

그가 무슨 교를 창시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죽은 다음에‍ 혹은 얼마 후에‍ 저절로 생긴 거죠. 부처가 열반에 들고‍ 난 후 난데없이‍ 불교가 생겨난 것처럼요. 누가 세웠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람들은 부처가‍ 불교 창시자라 하죠. 말도 안돼요! 그는‍ 아니에요. 그런 일에‍ 신경도 쓰지 않았죠. 시크교 구루가 죽자‍ 시크교가 생겨났고‍ 그리스도가 떠나자‍ 기독교가 생긴 거죠.

구루 나낙은 매우‍ 금욕적인 스승이자‍ 깨달은 성인이었어요. 그는 어디든 걸어 다녔고‍ 주어지는 대로 먹었어요. 아무도 먹을 걸 주지‍ 않거나 어디서 음식을‍ 사거나 구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그의 삶에 관한 기록은‍ 아주 적습니다. 하지만 나는 몇몇‍ 이야기들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속뜻을 통해‍ 구루 나낙이 고행자임을‍ 추측했어요. 그는 어디든 걸어 다녔고‍ 산딸기 같은 걸‍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그가‍ 좀더 널리 알려졌을 때‍ 아마도 사람들이 그에게‍ 머물 장소와 음식을‍ 제공했을 겁니다. 제자들이 공양을 했겠죠. 하지만 원래 그는‍ 사치라곤 몰랐어요.

어떤 이야기를 읽었는데‍ 한번은 그가‍ 시자인 제자를 데리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 제자가 말했어요. 『오, 시내에서 잔치가‍ 열리고 있네요. 가서 음식을 좀‍ 얻어와야겠습니다』‍ 하지만 구루 나낙은‍ 상관 않고 그냥 숲에서 산딸기를 따서 먹었죠. 그래서 그는 명성과‍ 영예 같은 건 개의치‍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시크교의 마지막‍ 구루인10번째 구루는‍ 왕이나 왕자처럼 옷을‍ 입었어요. 왕족처럼‍ 아주 아름답고‍ 화려하고 품위 있게‍ 차려 입었죠.

또 관음보살처럼‍ 차려 입은 스승이나‍ 교사들도 있었어요. 관음보살은 고행을‍ 한 것 같진 않아요. 그녀는 아름답게 입었죠. 여러분 스승처럼 과하게‍ 치장하진 않았지만요. 하지만 그녀도 아름다운‍ 의상을 걸쳤죠. 아마‍ 나중에 그랬을 거예요. 혹은 어쩌면 그게 그녀가‍ 세상 사람들을 구하거나‍ 돕기 위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보여진‍ 그녀의 진짜 모습이겠죠. 하지만 난 누더기 옷을‍ 입은 그녀의 동상들을‍ 봤어요. 아마 너무 오래‍ 명상을 해서 그랬을 테죠. 그녀가 영적 사명 초기에‍ 명상을 아주 많이 해서‍ 옷이 다 너덜너덜해지고‍ 만 갈래로 찢어지고‍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 그녀도 고행을‍ 한 시기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 좀더 알려지자‍ 제자들이 그녀에게‍ 좀 더 화려한 옷들을‍ 공양했을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고‍ 내면을 판단하지 마세요. 귀한 보석이 거칠고‍ 볼품없는 바위 속에‍ 숨어있는 것처럼요. 보석상점이나 박물관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그걸 반으로 자르면‍ 빈 공간이 있고 그 안에‍ 반짝이는 많은 보석들이‍ 있어요. 그런 식이죠. 어떻게 보이든 간에‍ 우리 육신은 그저 밖에‍ 걸치는 옷일 뿐입니다. 진정한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뭔가를 들을 땐‍ 듣는 본성이 듣는 거죠. 본연의 타고난 청력이‍ 듣는 거예요. 하지만 우린 그것에‍ 익숙해서 귀로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볼 때도‍ 보는 본성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해져서‍ 우리 눈이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보는 자」는 보는 그 사람이 아니고‍ 「듣는 자」도 그 사람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는 외관에‍ 익숙하고, 이런 기능들을‍ 사용하고 생각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이것이‍ 「우리」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관음법문은‍ 진짜 듣는 이와‍ 진짜 보는 이에게‍ 돌아가도록‍ 가르칩니다.

부처께서 이렇게 말했죠. 『귀를 내면으로 돌리고‍ 눈을 내면으로 돌려라, 그러면 불성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똑같이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말한 걸 알 겁니다. 문수보살이나 관음보살‍ 같은 주변 제자들도‍ 똑같은 말을 했죠.

산스크리트어로 관음, 관세음이란 이름은, 사실‍ 『우주의 소리, 창조의 소리를‍ 관하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부 번역가들이‍ 그녀가 세속의 소리를‍ 관하는 것으로 번역했죠. 그녀가 관하는 건‍ 이 세상이나 세속적인‍ 게 아니에요. 관음보살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우리는 매일같이‍ 항상 듣고 있습니다. (탁상을 치면서) 들을 수 있죠?‍ 그러니 이것 저것을‍ 들으라고 관음보살이‍ 말해 줄 필요는 없죠. 그러니 그녀 또한‍ 듣는 걸 내면으로 돌리고‍ 듣는 근원으로 돌아가며‍ 이 육신의 참된 주인, 자신의 진정한 자아에게‍ 돌아가라는 걸‍ 뜻한 것이죠. 많은 스승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실행하는 이는‍ 적죠. 방법을 모르니까요.

사람들은 보는 본성을‍ 여는 방법을 모르고‍ 듣는 본성을 여는 법도‍ 모릅니다. 그래서 태곳적부터‍ 수많은 승려들이‍ 고행을 했던 겁니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 온갖 고행을 했죠. 모든 걸 버리고‍ 세상의 모든 집착을‍ 끊으면‍ 불성을 얻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렇게 쉬운 게 아니죠. 불성이나‍ 그리스도의 본성은‍ 뭔가로 거래하거나‍ 돈이나 보석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니죠.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정말 귀한 겁니다. 아주 특별하고 귀한‍ 방법으로 찾아야 합니다. 처자식과 부와 왕국 등‍ 모든 걸 버리고‍ 먹지도 않고 혹은 아주 조금만 먹거나‍ 한끼만 먹으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고행자들과 출가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고승이‍ 앉아서 명상하고 있던‍ 승려들에게 말했어요. 그 스승이 물었죠. 『다들 뭐하고 있는‍ 건가?』 그들이 답했죠. 『깨닫기 위해 애써‍ 명상하는 중입니다』‍ 그러자 그 선승은‍ 벽돌인가 돌멩이인가를‍ 집어 들더니 땅에다. 갈기 시작했어요. 승려들이 그에게 물었죠. 『뭐 하시는 겁니까?』‍ 『이 돌로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그러자‍ 승려들이 말했죠. 『어떻게‍ 이 거칠고 쓸모 없는 돌로‍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죠. 『그대들은 거기‍ 멍하니 앉아서 어떻게‍ 깨달으려 하는가?』‍

아무 소용없죠. 몇 천년이 지나고‍ 온 세상이 왔다 가고‍ 만물이 다시 생겨나고‍ 사라질 때까지‍ 앉아 있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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